조경은
회화·조각·산업디자인·건축·토목·도시계획 등의 분야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또한 조경은 예술이자 기술이고 사회적 수요의 산물이며, 심미성과 기능성과 공공성은 조경의 기본적 특성이자 조경이 지향해야 할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은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진 생존조건의 총화이며, 인간은 유사 이래로 환경과의 상호관계를 지속해왔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인간은 환경을 의도적으로 변화시켜왔는데, 이러한 변화의 결과물 혹은 그러한 변화를 일으키는 인간행위를 광의의 조
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경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성을 강조하는 근대적 의미의 조경은 1860년대를 전후하여 미국의 A.다우닝, F.옴스테드, C.엘리어트 등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던 '공원운동(Public Park Movement)'에
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구에 있어서 조경은
산업혁명과 도시화의 악영향이었던 도시 위생문제에 대처하고 노동계층의 여가공간을 마련해 주기 위한 개념으로 시작되었다. 그 이전의 조경은 대개 사적(
私的)인 조원(
造園)행위에 국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경이라는 말은 1858년 F.옴스테드와 C.보가 조경가(landscape architect)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이후 보편화되었다. 조경은 시대적 요구와 사회적 필요성의 변화에 따라 그 성격을 달리해 가며 인간 정주환경의 개선에 이바지하여 왔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무분별한 도시화와 도시팽창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원적인 도시환경을 창조하고 도시미를 고양하는 방향으로 조경의 초점이 맞추어졌다. '도시미운동(City Beautiful Movement)'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여러 예술 분야의
모더니즘운동과 맥을 같이하면서 뛰어난 조경가들과 조경작품들이 탄생되었으며, 도시 근교의 대규모 부동산 개발사업과 공원 및 녹지체계수립 등에 이바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후 복구사업을 중심으로 조경의 범위 및 규모가 확대되면서 전문업으로서의 영역을 확고히 해갔다. 특히 1960년대 이후에 조경은 범지구적인 문제로 부상한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환경의 보전과 치료로 관심을 돌리게되며, 광역적인 대규모 개발사업 등에 있어서 환경적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에 목표를 두게 되었다.
1980년대에는 다시 조경을 예술로 파악하고자 하는 일련의 움직임이 일었는데, 이는 과학·문학·예술 전반을 지배했던
모더니즘에 대한 회의와 반성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대표적인 조경가로 T.처치, G.에크보, D.카일리, J.로즈, L.핼프린 등을 들 수 있으며, 최근에는 P.워커, M.슈왈츠, G.하그리브스 등의 작품이 주목을 끌고 있다. 근래의 몇몇 작품은 환경미술(environmental art) 및 대지예술(earth work)과 그 특성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반 대규모 국토개발사업 및 고속도로개발 등에 맞추어 ‘조경업’이라는 전문업이 출범하였다.
1973년 서울대학과 영남대학에 조경학과가 설치됨으로써 전문인력이 배출되기 시작했으며, 조경기술자격(기술사·기사)이 신설되고 조경가협회 및 조경사협회가 창설됨으로써 전문업으로서의 골격이 마련되었다. 1970년대 이후의 대표적인 공공 조경작품으로는 파리공원,
올림픽공원, 용산가족공원, 예술의 전당, 무역센터 광장, 과천·분당·일산 신도시 등을 들 수 있다.
초창기에는 조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미했으나, 이후 한국의 조경은 20여년간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도시환경과 자연환경의 곳곳을 보다 인간에게 쓸모있고 아름답게 다듬고 가꾸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또한 서양 문물의 급속한 전파과정 속에서 전통문화 유산을 보전하고 한국적 조경양식을 재창조해야 할 책임을 안고 있다.